“미국 시장이 요즘 너무 좋다”는 말은 12월 중순 실리콘밸리의 중심인 팔로알토를 방문하면서 들었던 많은 이야기의 공통점이었다. 특히 인공지능(AI)이 이끌어 가는 혁신의 미래는 현지 창업 생태계와 벤처투자사 모두에게 가장 뜨거운 주제다. 출장에서 돌아온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지난 27일에는 현지로부터 깜짝 놀랄만한 소식이 전해졌다. 오픈AI가 퍼블릭 베네핏 코퍼레이션(Public Benefit Corporation, 이하 PBC)으로 전환한다는 발표였다.
오픈AI는 2015년 비영리 법인으로 출발했지만, AI 기술 개발에 필요한 재원을 효과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2019년 산하에 영리 법인을 설립한 바 있다. 오픈AI는 ‘미션을 이루기 위해 왜 오픈AI의 구조는 진화해야만 하는가?’(Why OpenAI’s Structure Must Evolve To Advance Our Mission)라는 글을 통해 해당 영리 법인을 2025년 내에 PBC로 전환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비영리 거버넌스와 인공지능 윤리기준을 탈피해 막대한 상업적 이익을 추구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진 때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발표였다. 경쟁사로 불리는 앤트로픽(Anthropic)과 일론 머스크가 만든 xAI도 일찌감치 PBC 법인 형태를 가지고 있기에 오픈AI의 PBC 합류를 AI 업계는 '결정적인 순간(defining moment)'으로 평가하고 있다.
오픈AI가 선택한 PBC란?
PBC란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어떤 기업들이 선택하고 있을까? 흔하게 ‘베네핏 코퍼레이션’(Benefit Corporation)이라 불리는 법인격은 전통적인 영리법인(C Corporation)과 달리 주주의 재무적 이익뿐만 아니라 특정 사회적, 환경적, 또는 공익적 목표를 법적으로 추구하도록 명시된 법인 형태다. 즉, 오픈AI가 PBC가 된다면 ‘AI 기술을 인류에게 유익하게 만든다’는 목적에 맞는 의사결정과 운영을 해야 한다.
잘 알려진 PBC에는 상장 회사인 킥스타터(세계 최대의 온라인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레모네이드(디지털 보험 회사), 와비파커(안경 브랜드) 등이 있다. 이들은 사회환경적 가치를 추구하는 경영상의 의사결정에 투자자들이 주주이익에 반한다는 소송을 걸지 못하도록 보호하는 법적 구조를 PBC를 통해 확보했다. 가족회사였다가 2022년 회사 소유권을 비영리법인에 이전한 파타고니아 역시 PBC 법인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2010년 미국 메릴랜드주에서 처음 도입된 이후 현재 캘리포니아, 뉴욕 등 40개 주에서 관련 법이 제정됐다. 이를 토대로 이탈리아, 캐나다, 프랑스 등 다른 국가에서도 법제화가 됐다. 오픈AI가 PBC 법인을 등록할 델라웨어주에서는 명칭을 ‘퍼블릭 베네핏 코퍼레이션’으로 부르고 있다. PBC는 정관에 비재무적 공익 목표를 명시해 대표이사나 이사회가 주주 이익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행동주의 투자자의 공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특징이 있다.
PBC의 모체가 되는 비콥
앞서 PBC로 언급된 킥스타터, 레모네이드, 와비파커, 파타고니아의 공통점은 하나가 더 있다. 바로 비콥(B Corp)이고, PBC의 탄생 배경에는 비콥(B Corp) 운동이 있다. 2006년 설립된 비영리 민간단체 비랩(B Lab)이 환경적, 사회적 책임을 일정 기준 이상 충족하는 영리 기업에게 인증하는 비콥 기업은 2024년말 기준으로 9490개가 된다.
이러한 민간의 인증 제도가 영향을 끼쳐 2010년 PBC 법제도가 채택되었는데, 실제로 B Lab 공동설립자들이 PBC 법인 초안 작성에 참여한 바 있다. 즉, 비콥 운동이 법제화되어 탄생한 법인격이 PBC다. 실제로 미국의 모든 비콥 기업은 비콥 인증 이후 특정 기간 내에 PBC로 전환되어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다. PBC로 전환하는 오픈AI도 추후 한 단계 더 나아가 더 엄격한 기준을 준수해야 할 비콥이 될 가능성도 없진 않다.
오픈AI의 PBC 선택이 가져올 임팩트
오픈AI가 PBC가 된다는 것은 대외적으로 큰 의미를 가진다. 이는 AI 기술의 급격한 발전이 가져올 윤리적 문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다. 전문가들은 기술 발전이 가져오게 될 특이점(singularity)을 경고한다. 특이점은 AI가 인간의 이해와 통제를 넘어서는 순간을 뜻하며, 이는 윤리적 문제와 사회적 충격을 동반할 가능성이 크다. 오픈AI의 이번 선택은 인공지능 업계의 리더들이 보다 윤리적이며 사회적 책임을 고려하기 시작했다는 출사표라고도 볼 수 있다. 또한 오픈AI의 이번 선택이 AI 업계의 많은 스타트업에게 PBC 또는 비콥으로의 전환 검토를 강력하게 추동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는 PBC라는 법적 제도가 존재하지 않기에 국내 AI 스타트업 중에서도 비콥이 되길 원하는 기업들도 조만간 나오지 않을까 한다. 모든 PBC는 2년에 한번 자사의 소셜임팩트 리포팅을 발행해야 하는데, 오픈AI가 과연 어떤 소셜임팩트를 실현해 낼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비콥이기도 한 MYSC 입장에서 이번 오픈AI의 결정은 매우 고무적이다. AI 기술이 인간과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윤리적 경영을 추구하는 것이 전 세계적 흐름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AI와 소셜임팩트의 동행’이라는 오픈AI가 증명할 새로운 길이 전 세계적으로 어떤 변화를 불러일으킬지 주목해보자. 오픈AI의 PBC 전환은 AI 산업이 기술과 공익의 조화를 함께 이루는 철학적, 제도적, 전략적 도약을 이룬 ‘결정적인 순간’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제 한국에서도 이런 ‘결정적인 순간’을 만들어갈 기업들이 탄생하기를 고대한다. 오픈AI가 열어준 길을 따라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보자.
김정태 엠와이소셜컴퍼니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