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님, 20대 중반 여성들을 강사로 보내시면 그건 좀 어렵습니다. 게다가 석사나 박사 학위도 없는 분들이잖아요.”
한 대기업 교육 담당자의 반응에 충격을 받았다. 해당 기업의 신입사원 전원에게 혁신적 사고법을 교육하는 프로젝트를 맡았을 때의 일이다. MYSC는 디자인씽킹을 기반으로 한 커리큘럼을 구성했고, 관련 교재도 집필했으며, 이를 전달할 충분한 경험을 갖춘 사내 강사진을 준비했다. 그런데 유독 ‘강사진’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담당자는 그동안 기업의 신입사원 교육이 주로 교수나 업계 리더들에 의해 진행되어 왔다고 설명했다. 그런 전례 속에서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20대 여성 강사들’이 강단에 선다는 것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디자인씽킹의 본질을 다시 강조했다. “디자인씽킹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점에서 문제를 정의하는 과정입니다. 나이나 학력, 성별이 아니라 현장 경험과 창의적인 접근이 더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 논리를 바탕으로, 오히려 이런 변화를 수용하는 것이 조직 내 혁신적 사고를 확산하는 강력한 메시지가 될 것이라고 설득했다.
다행히 그 전략은 효과적이었다. 해당 기업 신입사원 교육 역사상 최초로 ‘20대 중반 학사 학위 소지 여성 강사들’이 인재개발원 강단에 섰다. 그것도 각자의 집으로 찾아온 리무진을 타고 말이다. 전례 없는 시도를 받아들인 담당자의 결단과 이를 최종 승인한 기업의 리더십에 감사와 존경을 표한다.
3월 8일, '세계여성의날'은 우리가 가진 고정관념과 사회적 관행을 돌아보는 중요한 날이다. 지난해 MYSC는 의미 있는 두 가지 성과를 기록했다. 나는 여성신문의 ‘히포시’(He for She) 리더로 선정되었고, MYSC는 유엔여성기구(UN Women)로부터 혁신적 파이낸싱(Innovative Financing) 분야에서 ‘특별상’(Special Mention Awardee)을 받았다. 특히 후자는 국내 투자사로서 처음으로 유엔여성기구의 젠더평등 원칙(Gender Equality Principle)을 투자 검토 과정에 반영한 것을 인정받은 결과였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여전히 가야 할 길이 멀다는 현실도 확인했다.
어떤 대기업의 담당자는 성평등 행사 초대장에서 ‘성평등’이라는 단어 대신 ‘Gender Equality’로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성평등’이라는 표현이 포함되면 결재를 받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또 다른 사례로, MYSC의 한 ‘젊은 여성’ 파트너가 지역 기관과 MOU를 체결하기 위해 방문했을 때, 모든 참석자가 남성이었고, 누구도 그녀를 대표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MYSC 대표가 언제 오는지’만을 궁금해했다.
사실 나 역시 무의식적인 고정관념에서 자유롭지 않다. 어떤 미팅에서 남성과 여성이 함께 들어오면 자동적으로 남성을 상급자로 여기고 인사한 적이 있다. 이런 실수를 통해 나 역시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길을 가기 위해 MYSC는 올해 한 권의 의미있는 책을 출간할 예정이다. ‘우연한 성차별주의자’(The Accidental Sexist)라는 책으로, JP모건 글로벌 리더였던 저자 게리 포드가 남성들을 위해 쓴 친절한 젠더 가이드다. 이 책이 한국에서 얼마나 받아들여질지는 알 수 없다. ‘성평등’이라는 단어를 홍보 문구에서 제외하고 ‘Gender Equality’로 표현하면 판매에 도움이 될까?
판매 결과와 상관없이, 전례가 있든 없든, 중요한 것은 우리가 여전히 가야 할 길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그 길을 함께 가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김정태 엠와이소셜컴퍼니 대표